고산정은 도산구곡 중 8곡인 고산곡에 있는 정자로,
고산정이 있는 협곡을 가송협(佳松峽)이라고도 한다.

고산정의 주인은 이황의 제자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1530년 ~ 1604) 이며, 1564년 건립했다. 도산구곡은 조선 성리학의 거목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흔적이 가득한 일대로, 오천 군자리에서 청량산 입구까지 낙동강 상류 아홉굽이 50리 (약 20km) 길을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 따 이황 사후에 퇴계의 후계인 이야순, 이이순 등이 설정한 명칭이다.

청량산 주인이라 칭했던 이황은 자신의 집이 있는 도산이나 도산서원에서 청량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제자의 정자를 찾아오기도 하고 그저 고산정에 오고 싶어서 찾기도 한 듯 하다.

퇴계와 고산정에 얽힌 기록 중 하나가 “내가 일찍이 금난수의 집에 간 일이 있었는데 산길이 몹시 험했다. 그래서 갈 때에는 말 고삐를 잔뜩 잡고 조심하는 마음을 풀지 아니하였는데, 돌아올 때에는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갈 때의 길 험한 것을 잊고 마치 탄탄한 큰길을 가듯 하였은즉, 마음을 잡고 놓음이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스승인 퇴계와 제자인 금난수와의 특별한 관계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이황은 고산정에서 금난수를 위해 시도 지었고 글씨도 써주었다. ‘서고산벽(書孤山壁)’ ‘유고산(遊孤山)’ ‘고산견금문원(孤山見琴聞遠)’ 같은 시는 이황이 고산정에서 쓴 시다. 또 성성재(惺惺齋) 편액과 고산별업(孤山別業)편액도 써주었다.

도산구곡 중 8곡인 고산곡과 고산정

실제 이 곳을 방문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쉬운 발걸음 아니다. 서울 톨게이트에서 222km로 자동차로 2시간 40분을 꼬박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쉬엄쉬엄 가더라도 3시간은 족히 소요되는 거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퇴계 이황과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거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인 이유 역시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러한 장소를 방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직접 어떤 대상을 직접 체험하고자 함과 동시에, 구체적인 사물에 덧씌어진 일종의 이미지와 같은 관념으로 부터 벗어나 보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 세상이 발전해서 직접 고산정을 방문하지 않고서도 기본적인 내용들을 얼마든지 알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디지털화 된 정보는 결코 사물의 구체성을 포함한 미묘한 감각의 작용까지 전달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도산구곡이란 개념 역시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스토리텔링과 같은 것이다. 그것도 퇴계 생전이 아니라 퇴계 사후 후예에 의해 명령된 것이다. 주자의 무이구곡을 퇴계가 몰랐을리 만무하지만, 퇴계 생전 스스로 도산구곡이라 칭하지 않았다. 스스로 청량산의 주인이라 칭한것은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 사실이지만, 도산구곡은 분명 후대의 스토리텔링이며, 현대에는 이러한 스토리텔링에 선비문화길, 예던길 등의 이름으로 또다른 이미지들이 덧씌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낙동강과 고산정

건축을 함에 있어 이러한 스토리텔링이나 이미지와 같은 기호적이고 관념적인 것들이 특별히 경계해야할 대상들이다. 대형 건축물을 설계하고자 할 때, 방대한 프로그램과 규모 등의 이유로 많은 것들을 추상화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사물과 장소의 구체적인 감각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대상이다. 실제 대가라고 칭하는 많은 유명한 건축가들의 작품은 대형 건축물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사물과 장소의 구체성을 소흘히 다루는 것을 볼 수 없다.

과거의 건축가들은 물론이고 피터 줌토르, 스티븐 홀, 구마겐코 등 종종 언급되는 소위 유명세를 타고 있는 건축가들의 작품에서 이러한 사물과 장소의 구체성은 의미심장하게 해석되고 구축되는 대상들이다.

특히 외부환경적 요소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건축설계 프로젝트의 경우 이러한 구체적인 장소적 가치는, 다른 어떤 가치들 보다 우선하여 고려될 수밖에 없는 대상일 것이다. 작은 규모의 집짓기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단독주택과 같은 소규모 건축물일수록 이러한 사물과 장소 등의 구체적인 대상들은 전체 프로젝트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요인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건축가들의 작업 방시에는 이러한 구체성 보다 추상적인 가치들이 훨씬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단독주택과 같은 대상은 이러한 구체성의 결여로 인한 이런저런 문제점 등을 지속적을 반복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중 하나일 것이다.

산수와 사제의 흔적, 주자의 무이구곡 이전에 도산구곡은 태백에서 발원한 낙동강 물줄기가 문수지맥과 덕산지맥 사이에서 안동으로 흘러가기 전에 자연 지형과 기후에 의해 생성된 자연환경이며, 이 땅에 정착하여 삶을 일구어 왔던 사람들과 환경의 관계성의 소산이며 거주함 그 자체인 것이다.

집과 건축이란 대상을 생각하고 다룸에 있어 이러한 구체적인 사물과 장소에 대한 생각은 쉽게 간과해서 안될 대상이며 동시에 감각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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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장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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