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집을 짓고, 좋은 집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쉽게 말해 “행복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고민인 것입니다.

우리가 왜 집을 짓고, 좋은 집은 무엇인가? 등을 고민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집을 짓는가와 좋은 집은 무엇이냐는 질문은 장황한 이유와 복잡한 설명, 구구절절한 수사가 필요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결국 질문의 종착점은 행복일 것입니다.

대전 하기동 단독주택

하지만 고민의 이유는 행복을 위함이란 결론에 쉽게 동의할 수 있지만, 집짓기에서 이러한 행복이란 개념은 쉬운 결론처럼은 그렇게 쉬운 개념은 아닐 것입니다. 다소 어려울 듯 한 행복에 대한 개념을 2000년 전 사람인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참고해 볼 만한 내용이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모든 것에는 고유한 기능이 있고, 그것을 ‘탁월하게 발휘되는 영혼의 활동’을 행복(eudaimonia)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탁월성을 아레테(Arete)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아레테는 일종의 ‘덕’으로 탁월함을 지속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품성의 준비상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즉 행복이란 고유한 탁월성(Arete)을 발휘하는 것으로써,
소크라테스는 앎(episteme)이라고도 했습니다.

좀 더 쉽게 번역을 첨가하자면 행복은 일종의 ‘이해(理解)‘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해라는 것은 환경, 인간, 기술, 사회, 미학 등을 이해하는 것을 근간으로 하는하는 건축의 속성에 대한 이해이며, 일련의 집짓기는 이러한 생각을 기반으로 건축가의 건축적 행위를 통해 구체화하여 실현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이러한 대상에 대한 ‘이해’가 ‘지식’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해를 어떤 지식 혹은 정보 등의 개념으로 오해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녹색 검색 창 속에서 어떤 지식과 정보를 찾아 헤매고, 건축박람회장을 누빈다고 해서 집과 우리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고민과 방황의 시간을 가질 확률이 더 농후하며, 무엇보다 이러한 지식과 정보는 반드시 사실과 진실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행복한 집짓기를 위해서 녹색 검색 창과 건축박람회장 보다 우리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사물과 사람, 사회에 대한 이해의 척도는 결국 우리의 마음가짐이며, 마음가짐에 따라 사물과 사람, 사회란 대상은 전혀 다른 기준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탁월하게 발휘되는 영혼의 활동’이란 의미는 다름 아닌 우리의 ‘마음가짐’ 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탁월함’은 어려운 지식이나 정보보다 우리의 마음가짐이란 실천의 문제라면 오히려 다행스러운 점 아닐까합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행복한 집짓기가 가능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려운 지식이나 객관적인 사실관계와 진실에 입각한 정보는 건축주 스스로가 아닌 건축가에게 자문을 구하면 그만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집짓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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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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