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지인과 함께 토지구입 관계로 양평 어느 부동산을 방문한 적이 있다. ‘~부동산’이란 간판 옆에 ‘~개발’이란 타이틀과 함께 토지구매뿐만 아니라 집을 짓는 일체 행위를 토탈 서비스하고 있다며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사뭇 진지함이 느껴지던 기억이 있다. 소위 전원주택을 마련하고자 하는 예비건축주들에게 있어 그렇게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한번은 향남 인근 택지개발지구 내 부동산에서 1억5천을 투자하면 설계부터 시공까지 완료하여 감정가 5~6억 상당의 수익형 임대주택을 완공하여 인도하고, 임대 및 입주 후 사후관리까지 책임진다면서 이에 대한 손익계산서까지 자신 있게 브리핑하는 부동산중개사무소들을 만난 적도 있다. 언뜻 들으면 혹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다. 도심의 경우 역시 단독주택을 비롯한 상가주택, 다가구주택, 다세대주택 등의 소규모건축물 시장에서 부동산중개업 사무소를 매개로 한 이러한 유사한 집짓기 모습은 그렇게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집짓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녹색 포털사이트 네모 창에서 집짓기와 관련된 각종 키워드를 검색해 보게 되는데, 이러한 인터넷의 바다에는 감당하기 힘든 내용의 정보들이 끝도 없이 나열된다. 전문 빌더들의 자신들만의 노하우와 차별화된 집짓기 방법들도 수두룩하고, 플랫폼 비즈니스를 가장한 마케팅 업체들의 의미심장한 문구들도 즐비하며 가깝게는 성실한 건축업자를 소개해주겠다는 지인들도 있다. 어쩜 집짓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론 뭔가 정리되지 않은 찜찜한 부분이 있음을 감지한다. 밀림을 방불케 하는 이러한 습도 높은 정보들은 소규모건축물 시장의 다양한 주체들이 저마다의 이야기와 저마다의 방식으로 정글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그렇게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이유가 어찌 되었던, 현상을 인지하고 무엇보다 이러한 상황과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낯선 정글에 있다고 가정한다면 무엇보다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합리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어설픈 자기주장이나 막연한 직감만으로 경솔하게 판단했다가는 더 난감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우리의 집짓기 현실이 다소 정글의 속성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자연 상태의 정글과 달리 나름대로 사회적 테두리 안에서 충분히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의 집짓기 현실을 정글처럼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문제이다. 종종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집짓기 피해사례 등 다양한 클레임과 업체들에 대한 비판 등, 날 선 이야기들을 목격하게 된다. 더불어 그동안 공부하고 수집한 갖가지 정보들을 공유하면서 현장에서의 문제점과 그 이상의 억측들로 게시판은 활활 불타오른다. 대부분 시공사와 관계된 갈등이지만 설계사무실과의 갈등도 종종 있다. 아마존의 눈물과 북극의 눈물은 값싸고 더 좋은 재화를 얻기 위한 우리의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이듯 활활 타오르는 게시판 역시 이러한 욕망에 관한 우리의 자화상일지 모른다.

정글에서 나침반과 칼만 있으면 정글 속에서 멋있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어리석은 발상보다, 현명한 안내자를 고용하는 것이 훨씬 유익한 방법임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낯선 방문자에게 정글은 생존의 문제지만 안내자에겐 정글은 일종의 캠핑장이다. 당연히 집짓기는 생존의 문제가 아닌 여행이고 문화의 대상이어야 한다. 정글이 다양한 생물학적 종들의 자연적 메커니즘의 집합체이듯, 집짓기 생태계 역시 다양한 주체들의 사회적 관계망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다양한 주체들이란 부동산중개업소, 부동산중개업소와 연계된 건축 업체(업자), 건축설계사무소, 허가 방, 허가 방과 연계된 업체(업자), 업체(업자)와 연계된 허가 방, 개인 빌더, 인테리어업체, 하우징업체, 건축시공업체(업자), 컨설팅업체, CM업체, 건축가 등 다양한 주체들이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주체들은 사회적 환경 속에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으며, 저마다의 방법으로 상호 직, 간접적 개연성을 가지고 공존하기도 한다. 한때 정글의 왕자는 타잔이고 라이언 킹이라는 법칙이 있었는지 몰라도 집짓기 생태계에선 정글의 왕자는 따로 없다. 정글의 다양한 주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존하면서 환경의 변화 등에 따라가게끔 도태하는 주체들도 있고 가끔 돌연변이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주체들도 있다. 굳이 정글의 법칙을 논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유유상종의 법칙 정도이지 않을까 한다.

사진출처 : 비온후풍경


정글과 같은 소규모건축물 시장의 모습이 가장 사실적으로 투영된 곳 중 하나가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이라는 지역이 있다. 행정구역상 경기도 광주시에 속하고 있지만, 1기 신도시 중 가장 대표적인 거주지인 천당 아래 분당을 사실상 생활권으로 영위하는 혜택 때문에 광주시의 도시계획과 전혀 무관한 특이한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곳이다. 우선 행정구역명에서 알 수 있듯이 오포읍이란 읍 단위 소재지이고 신현리, 능평리, 문형리 등이 오포읍의 주요 거주지역인 ‘리’ 단위 마을이다. 하지만 오포읍 일대는 소위 분당 프리미엄이란 지리적 입지여건 등으로 일반적 읍, 리 단위 마을과는 그 풍경과 특성이 현격히 다른 특성이 있다. 소위 난개발의 대명사로 통하기도 하는데 도시적 인프라 구축과는 전혀 무관하게 개인 단독주택, 부동산업체들의 전원주택단지와 소위 빌라 등의 다가구 및 다세대주택, 대형건설사에 의한 아파트 단지 및 타운하우스 등까지 아마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거주 유형의 대부분을 이 좁은 지역에서 모두 만날 수 있다. 그것도 그 어떤 도시적 인프라가 계획되거나 제도적 체계성 없이, 대부분 개별 민간 주체들에 의해 소위 집장사의 전쟁터가 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실재 출근 시간 신현리 안쪽 지역에서 테재 고개까지 이 작은 리 단위 지역을 지나는 데 1시간이 소요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직장 생활 시절 신현리 지역에 조그만 전원주택단지 프로젝트를 통해 이 지역을 처음 인지하게 되었는데 벌써 15년 넘게 이 지역은 집 장사들의 천국이자 대표적인 정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글에서 오두막을 짓고자 하는 이도 있고 정글에 리조트를 짓고자 하는 이도 있다. 어떠한 경우든 건축주는 그 목적에 따라 목적에 부합하는 안내자, 파트너를 선택해야 한다. 사실 파트너 선정에서 이미 어떤 집이 지어질지 가늠해 볼 수 있을 정도로 정글에서 파트너 선정은 중요한 과제이다. 목적에 부합하는 합당한 주체들을 선별할 수 있는 안목과 상황에 대한 이해력은 오롯이 건축주의 몫이다. 그리고 정글에서 이러한 안내자를 선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우리가 대체로 익숙한 방법의 하나는 ‘평당 얼마인가?’라는 기준이다. 척박하기 그지없는 현실이다. 치기 어린 디자인조차 새롭고 신선한 건축물로 주목받을 만큼 집짓기에 대한 사회적 경험과 문화적 토양은 척박하다 할 수 있다. 더군다나 ‘평당 얼마인가?’라는 기준으로 정글의 안내자를 선택하는 것은 오두막을 짓든 리조트를 짓든 크게 도움 되는 방법을 아니다. 정글의 또 하나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글 보전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습도 높고 수림이 우거져 불확정적으로 보이는 정글의 시각적 특성 때문에 비교분석과 의인화를 통해 정글을 정량화하고 논리화하여 상황과 문제점을 판단하고 해결해 가고자 하지만, 정글은 이미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안정화 되어 있다. 무조건 싸고 무조건 좋은 그런 관계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정글에서 어떤 행위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하게 되어 있다. 평당 400만 원이 소요되는 집짓기가 있고 평당 700만 원이 소요되는 집짓기가 각각 있을지는 몰라도, 평당 700만 원이 소요되는 집짓기를 평당 400만 원으로 실현하는 집짓기는 없다. 쉽게 말해 싸고 좋은 집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평당 얼마인가?’라는 기준으로 정글의 안내자를 찾고자 한다는 것은 엄중한 정글의 법칙을 고려해 보면, 그 결과가 어떠할지 충분히 예측 가능할 것이다. 정글을 괜히 정글이라 하겠는가.

사진출처 : 비온후풍경


그리고 정글에는 수많은 정보가 흘러넘친다. 도시의 낮과 밤은 너무나 달라서 도시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인지 판단하기 힘들 듯, 우리의 삶 자체도 이러한 도시의 낮과 밤처럼 무엇이 진짜 도시의 모습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밀도 높은 도시가 내뿜는 이미지와 차고 흘러넘치는 정보 덕분에 우리는 정작 집과 집짓기에 있어 삶과 태도에 관한 이야기와 여유를 찾아보는 것조차 사치에 가깝다. 그리고 우리 모두 ‘사실(fact)’을 알고 싶어서 하지만 정작 무엇이 ‘사실(fact)’ 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삼중창이 단열성능이 좋다’라는 정보는 사실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단열성능이란 개념은 열관류율이란 공학적 검증을 통해 평가할 수 있는 대상이며, 창호의 단열 성능평가는 창호 프레임 성능과 유리의 성능을 구분해서 평가되어야 한다. 그리고 창호 프레임의 단열성능은 창호 타입별 각각의 시험성적평가가 필요한 항목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접하게 되는 삼중 창호 중 개별 창호 타입별 시험성적서를 가지고 있는 제품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다. 따라서 ‘삼중창이란 유리의 성능만으로 창호의 단열성능이 좋다’라는 정보는 사실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정보의 사실은 대부분 이런 것들이 많다. 현대사회에서 정보는 반드시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보는 정보 그 자체보다 정보에 관한 판단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또 한 가지 일례로 개인 빌더들의 블로그를 통해 콘크리트기초와 목구조의 접합 부위 처리방식 등 목조주택에 대한 저마다의 노하우가 담긴 정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엔지니어링 입장에서 검토해 본다면 맞는 부분도 있고 틀린 부분도 있다. 숙련된 시공자의 경험적 판단이라고 하더라도 공학적 판단은 다를 수 있다.

더불어 집짓기를 준비면서 통과의례 중 하나가 박람회장을 찾는 일이다. 박람회장은 집짓기 정보의 백과사전일 것 같지만 실재는 단순한 백화점일 뿐이다. 가끔 유익한 정보와 신기술로 무장한 유용한 업체들과의 소통의 창구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속성은 시장사회의 마케팅 공간이다. 건축과 자동차의 차이점 중 하나는 건축은 제품의 조립, 생산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건축박람회장 대다수 정보에서는 제품에 대한 소개는 있을지 몰라도 건축의 재료적 속성과 재료의 관계성 및 디테일을 이해할 수 있는 정보들을 만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우수한 성능의 창호를 선택했다 하더라도 창호의 설치, 구조체 및 마감재와 만나는 이음매 부위의 시공방법, 관련 후레싱(Flashing) 처리 등이 적절하지 못하다면, 값비싼 창호가 그만큼의 성능을 발휘할 수 없다. 창호 자체의 성능보다 주택 전체의 단열, 기밀 수준 등을 고려한 적절한 품질의 창호와 올바른 창호 시공법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부분이다.

즉, 정보의 사실성 및 판단 여부와 더불어 이러한 정보들의 관계성을 이해하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적절한 균형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수한 제품은 좋은 집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집은 자동차처럼 제품들의 생산, 조립만으로 결코 성능 좋은 집이 될 수 없다. 자동차와 달리 건축은 균질하지 못한 현장 상황 속에서 기계가 아닌 사람이 만들기 때문이다. 자동차와 다른 건축의 고유한 속성이다. 집 ‘만들기’가 아닌 집 ‘짓기’인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정보에 관한 판단 여부는 일반인들에게 어려운 부분이며 집짓기에 있어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며 건축가의 개입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건축가는 집짓기에 있어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역할이 아니다. 집짓기에 사용하는 재료와 재료 간의 관계성을 고려하여 올바른 시공방법을 제시하고 관리, 감독하는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설계와 시공 등 일련의 집짓기 과정에서 프로젝트 전체를 안정적이고 합리적으로 관리,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집짓기에서 갖가지 정보와 재료 등의 사실성과 유용성의 판단 여부는 마케팅 속의 정보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반드시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해당 정보의 정합성과 집 전체의 균형적인 측면에서 전문가의 종합적 판단을 통해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가끔 늦은 작업을 마치고 잠들기 전, 나 홀로 거실에서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인데 기상천외한 각양각색 자연인들의 모습이 언젠가부터 동경의 대상이 된 듯하다. 하지만 환한 대낮에 늦은 밤 자연인을 다시 생각해 본다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환영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자각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종종 매체를 통해 콘텐츠(Contents) 혹은 스토리(Story) 중심의 정보들을 종종 마주한다. 러브하우스 열풍 이후 잊힐만하면 등장하는 집짓기와 관련된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있다. 남해 바다 인접한 어느 연예인의 삶과 집에 관한 이야기는 다소 식상한 포맷이 되었고, 개그맨을 앞세운 리얼 집짓기 체험 프로그램, 저렴한 비용으로 꾸며보는 셀프 인테리어 프로그램, 작은 공간을 알뜰하고 세련되게 리모델링한 젊은 부부의 이야기, 아토피 환자의 건강한 집짓기 등 집짓기와 관계된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다양한 포맷으로 생산 유통된다.

정보 수요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는 점도 있지만 우려스러운 점도 적지 않다. 지극히 자극적인 소재 중심으로 통용된다는 점이다. 정글의 족장과 함께하면 1억으로 집짓기가 정말 가능할 것 같고, 경쟁적으로 작은집을 찾아 특수성을 부각하는 세태 등은 보편적 주거문화의 토대 증진의 입장에서 그렇게 바람직한 풍토가 아닌 측면도 있다. 종종 방송작가 혹은 정기간행물 기자로부터 주택소개 요청 전화를 받으면서 느끼는 점 역시 다분히 의도되고 기획된 측면이 많다는 점이다. 매체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정보의 낭만적 왜곡에 대해서 현실적인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매체는 매체일 뿐이다.

집을 짓고자 하는 일반인들에게 대한민국 건축 현실에 대한 복잡한 상황들을 일일이 이해해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겠지만, 집짓기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런저런 상황들에 대한 예방 백신 차원에서 이러한 상황과 속성을 잠시나마 이해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짐작하듯 한국 사회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집짓기 분야 역시 우리 사회의 굴절된 현실 상황과 더불어 나름의 속사정들이 많다.

구구절절한 대한민국 건축의 이런저런 속사정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들은 굳이 지면을 할애하여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여타의 다른 분야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식민지 강점기를 포함한 굴곡진 한국 근대사 속에서, 영역은 있으나 전문성과 합리적인 시스템의 부재’ 정도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반인들에겐 다소 어이없게 들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국 사회에서 건축물을 설계하고 그 실현을 책임지는 전문 직능으로서의 건축은 제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 이상헌 저, 『대한민국에 건축은 없다』 p19, 효형출판, 2013

한국에 훌륭한 건축이나 건축가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구의 의미에서 건축이 문화적, 사회적으로 제도화되어 있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인용문을 참고하면 안타깝게도 위 내용은 사실이다. 대한민국 건축 현실을 대략 짐작하는 정도로 참고하면 족할 듯하다. 어차피 이러한 내용은 집짓기 현실에서 건축주와 그렇게 밀접한 문제이거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의 집짓기 현실이 쉽지 않은 듯하고 그 이유를 굳이 물어본다면 그 대답 중 일부 내용이지 않을까 한다.

단독주택을 장만하고자 할 때 건축주는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고 어떤 말이 사실인지 알면 알수록 애매해지는 집짓기 현실은 대부분 이러한 상황에 기인하고 있다. 한마디로 시스템의 부재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부동산중개업소의 소개로 집을 짓든 주택업체의 인터넷 광고를 통해 집을 짓든 개인 목수를 통해 집을 짓든 혹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 집일 짓든 그다지 어색한 방법이지 않다.

특히 단독주택과 같은 소규모건축물 시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상상 이상으로 왜곡투성이다. 가장 시스템이 부재한 곳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건축주가 알아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며,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장이 소규모건축물 시장이다.

아파트와 단독주택은 대표적인 제도적 대상과 비제도적 대상의 사례이다. 아파트를 장만하면서 그렇게 복잡한 절차나 특별한 노하우는 필요 없다. 선택의 문제일 뿐 과정도 비교적 명료하고 어렵지 않다. 제도적으로 정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집 짓다가 10년 늙는 경우는 있어도 아파트 장만하다 10년 늙는 경우는 드문 이유이다. 물론 아파트 장만 과정이 다소 미흡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설계단계에서부터 시공, 주택 구입에 이르기까지 나름의 체계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단독주택 장만 과정은 제도적으로 취약한 부분이 많다. 그래서 집 지으면서 별별 일이 생기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언급되는 부분이 단독주택 등과 같은 소규모건축물과 관련된 제도적 부분이다. 소규모건축물이란 정의에 대해서도 몇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단독주택, 다가구주택, 다세대주택 및 근린생활시설 등 용도시설 등으로 종합건설 면허 없이 시공 가능한 규모인 건축물과 리모델링을 포함한 소위 인테리어 시장에서 통용되는 건축물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소규모건축물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관계 법령 개정을 통해 단독주택 등 일부를 제외하곤 종합건설 면허 대상의 건축물로 제도가 개선되었다.

과거와 달리 이러한 소규모건축물 시장의 규모가 성장하면서 이제 소규모건축물에 대한 제도적 체계성에 대한 요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기 시작한다. 물론 관련 법규 역시 과거에 비해 많은 보완이 있었고 일선 행정 부분 역시 많은 발전이 있었음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제도는 늘 그렇듯 사회적 요구에 늘 다소 미흡한 부분이 적지 않다. 이런저런 이유로 종합건설 면허 없이 시공 가능한 예외 건축물 조항도 보완되었고 소규모건축물 설계 감리 분리 제도, 내진설계 규정, 주차장 관련 법령 및 단열 등 에너지 관련 조항 등 적지 않은 법률적 보완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집짓기 현실의 체계성은 이러한 법령 몇 구절 수정 보완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좀 더 실효성 있고, 현실성을 반영할 수 있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제도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소규모건축물에 대한 특성을 관계 법령 몇 구절로 보완될 수 있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건축은 문화, 노동, 산업 등 다양한 사회적 요인들과 밀접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이러한 관계성의 이해를 토대로 소규모건축물 공급시장의 특성에 맞는 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실효성과 유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해가 필요한 점은 소규모건축물의 건축, 건설 방법과 대규모 건축물의 건축, 건설 방법은 같지 않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대규모 건축물의 건축, 건설 방법은 사회적으로 나름대로 체계화되어있다. 그 체계화 자체의 합목적성 등의 여부는 별개의 문제로 따져 보아야 하겠지만 분명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소규모건축물의 건축, 건설 방법은 이러한 체계성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앞서 언급한 소규모건축물과 관련된 제도의 정비가 필요했던 것은 정책입안자들의 정책을 통해 정비된 것이 아니라 시장의 늘어난 수요에 대한 급급한 행정적 보완 장치 정도라는 평가가 타당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관련 법령 개정은 오랜 시간 동안 준비된 정책을 통한 제도가 아닌 기존 제도에 몇 가지 사항을 보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 소규모건축물 시장의 특성을 고려하여 그 특성에 맞는 정책이라고 생각하는 관계 전문가는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소규모건축물의 무엇이 혹은 어떤 점이 대규모 건축물과 다르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쉬운 예를 들어본다. 우리가 아파트를 산다고 가정해 보면 관심 있는 지역의 아파트 공급 소식을 접하고 해당 모델하우스를 방문하여, 관련 상담을 통해 계약 후 분양 권리를 획득하는 것을 통해 아파트 구입은 시작된다. 내가 살 집임에도 불구하고 설계자가 누구인지, 감리자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으며 입주 전 사전점검 기간을 통해 점검하는 정도 이외에 아파트가 지어질 동안 건설 현장에 직접 방문하거나 건설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대부분 자본은 파이낸싱을 통해 조달되지만, 시행사와 시공사의 역할도 구분하기 어려우며 그 파이낸싱의 주체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다. 오로지 시공사 이름 하나 정도 알고 있을 뿐이며 중요한 것은 은행 대출조건이 어떤지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이 있다.

이에 반해 단독주택 구입 과정은 어떠한가. 우선 집을 지을 땅을 구입하는 것부터 만만치 않다. 전원주택의 경우 있지도 않은 가상의 임시분할도 하나만 믿고 토지를 구입하는 경우도 허다하며 일일이 부동산중개업소를 방문하는 것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아파트의 경우 누군지도 모르는 설계자를 단독주택 장만 과정에서는 직접 만나서 일일이 상담하며 설계자를 선정하여 설계하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러한 설계과정이 타당한지 혹은 그렇지 못한지 역시 판단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시공자를 선정하고 실재 건설 과정에 간접적이나마 참여하게 되고 자재 하나하나 신경 쓰이지 않는 것들이 없다. 얼핏 생각해도 집 짓는 일이 아파트와 비교하면 만만치 않은 일임이 자명하다. 이러한 의미를 달리 표현하자면 소규모건축물의 공급 상황이 사회적 시스템을 통해 정비 되지 못하고 있다는 단편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소규모건축물의 특성은 위와 같은 공급 방식 측면 이외에도 많은 차이가 있다. 아파트 설계의 경우 아파트 공화국이란 비아냥거림의 목소리도 있지만, 아파트 자체에 관한 기술적 연구 성과는 상당한 수준에 있다. 물론 이러한 성과는 건축설계사무소 혹은 시공사마다 적지 않은 기술적 편차가 있긴 하지만 공간 구성 및 평면, 내진, 단열 부분 등 여러 가지 기능적 측면에서 뚜렷한 성과가 있음을 분명 인정해야 할 것이다. 아파트에 대한 여러 기술적 수준은 설계 분야뿐만 아니라, 감리, CM, 시공 등 건설 행위 전반에 있어 나름의 체계성과 성과물을 축적해 가고 있음은 사실이다.

이에 비해 단독주택 등 소규모건축물의 건축 및 건설 방법은 그동안 적지 않은 단독주택 등이 공급되었음에도 이와 관련된 체계적인 기술적 성과물을 공유하기 어렵다. 아직도 경량목구조 구조도면조차 제대로 작성할 수 없는 건축설계사무소들이 비일비재하며 단독주택 특성을 고려한 단열 및 환경공학적 성과물 등을 실재 프로젝트에 효율적으로 반영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 단독주택 공급 주체들의 현주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설계자, 시공자 등 저마다 차별화된 설계, 디자인, 기술, 디테일 등을 홍보의 전면에 앞세우고 있지만 그러한 내용의 상당 부분은 건축공학적 검증이 필요한 내용이며 공학적 사실과 다른 내용도 부지기수이다. 이러한 가운데 건축주와 설계자 혹은 건축주와 시공자 간의 소소한 다툼에서부터 법적 분쟁 등은 단독주택 현장에서 끊이지 않는 골칫거리가 되어가고 있다.

일본의 경우 소규모건축물과 관련된 전문업체가 제도적 장치를 통해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고 우리의 아파트 공급시장에 적용되고 있는 사회적 여러 시스템이 단독주택 공급 시장에게도 원활하게 적용되고 있는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주택의 품질적인 측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보편적 기술에 대한 부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연간 몇만 호 이상 단독주택을 공급하는 일본의 단독주택 전문업체들은 우리의 아파트 공급시장과 마찬가지로 금융과 전문 조직 및 사회적 시스템을 단독주택 공급 시장에게도 원만하게 적용하고 있다.

우리의 집짓기 현실에 대한 이러한 상황들이 단독주택을 장만하고자 하는 개인들에게 중요할 수도 있고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우리의 단독주택 집짓기 과정이 다소 어렵고 혼란스러우며 각양각색인 이유에 대해 한 번쯤 이해해 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당분간 집짓기는 정글 속의 복불복인 상황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아뜰리에 비온후풍경 / OGL Archit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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