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란 대상을 생각하면서 일반 대중들 관점에서 가장 쉽게 접근하는 방법의 하나가 #스타일 #Style 이란 관점이 있다. 예를 들어 ‘심플하고 깔끔한 #모던하우스’ 혹은 ‘북유럽식(스칸디나비아) #디자인’ 등과 같은 표현인데, 이러한 표현에는 소위 어떤 스타일에 대한 관점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스타일에 대한 우리의 표현은 어떤 경우는 구체적인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추상적인 경우도 있다.

그리고 #집 이란 대상이 아닌, 소위 #카페인테리어 혹은 숙박시설이나 펜션 등과 같이 상업적인 목적의 건축물이라면 이러한 스타일이란 대상은 매우 중요한 관점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장소 와 #공간 의 스타일 문제가 목적한 사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사업에 수반되는 비용적 관점에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점을 참작하면 소위 ‘스타일’이란 대상에 대해 일반 건축주들이 민감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대상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스타일의 문제를 일종의 경향, 혹은 목적 행위 그 자체로 인식하는 것은 다소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요즘은 이런 스타일의 집이 유행한다거나, 이런 스타일의 장소가 손님들이 많이 찾는 분위기라는 이야기하는 관점이다. 특히 근래 커피 열풍 및 스테이(Stay)란 대상 등에서 각양각색의 ‘시그니처’로 인식될 수 있는 #건축 이나 #인테리어 대상을 스타일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손쉬운 방법일지 모르지만, 자칫 적지 않은 오류를 가지고 있는 관점임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스타일이란 대상은 어떤 ‘의미 작용’과 연관되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스타일이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유행하는 특정한 양식 혹은 전형’으로 통용된다. 유사한 특징을 포함하고 있는 일종의 #형식 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며, 일련의 이미지에 대한 총체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건축, 인테리어, 가구 등의 디자인 분야에선 소위 ‘형태’, ‘형식’이라는 의미가 성립할 수 있다. 그리고 스타일은 일종의 표현이란 관점에서 주체마다 다른 표현 양식이란 의미도 내포한다.

스타일에 대한 조금 더 상세한 설명을 위해 스타일이란 대상을 ‘형식(Form)’이란 단어로 치환해 보고자 한다. – 스타일을 형식(Form)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고 해서 큰 무리가 없다 – W. 타타르비키비치의 《형식 : 한가지 용어와 다섯 가지 개념의 역사》라는 글을 통해 이러한 #형식 이란 개념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여기서 ‘형식(Form)’이란 개념은 희랍의 두 단어 #모르페 와 #에이도스 를 대신하고 있는 라틴어 ‘포르마(forma)’부터 유래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는데, ‘모르페’라는 개념은 시각적 형식들에, ‘에이도스’라는 개념은 개념적 형식들에 사용되었던 말이다. 형식이란 의미는 이렇게 이미 이중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대상이며, 당연히 그 논의는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일례로 형식이 ‘내용(Content)’의 반대말로서 취해질 때 형식은 외적 양식을 뜻하게 되며, ‘소재(matter)’의 반대말로 사용될 경우 형식은 ‘형체(shape)’로 간주하며, ‘요소(element)’가 반대말이라면 형식은 배열, 배치라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형식이란 개념에 대해 W. 타타르비키비치는 다섯 가지 중요한 의미와 네 가지 주변 개념, 그리고 두 가지 새로운 개념들의 범주에서 각각 논의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형식이란 대상은 다양한 의미와 모호성을 갖고 있고, 앞으로도 그 모호성은 계속 남아 있을 것이고 설명하고 있다.**

** W. 타타르비키비치 저, 손효주 역, 『미학의 기본 개념사』(A History of Six Ideas) 중 《형식 : 한가지 용어와 다섯 가지 개념의 역사》, p257~282, 미진사, 1997

우리가 스타일이란 대상을 언급하면서 한편으론 매우 상식적인 대상이지만, 막상 그 대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할 때, 어딘가 석연치 않은 대상임을 직관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형식이란 의미 자체가 오랜 시간을 통해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어쩌면 스타일이란 대상은 일반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W. 타타르비키비치의 설명과 같은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내용도 있다는 정도를 의식할 수 있으면 좋을 듯하다. (일반인들이 아닌 어떤 대상의 행위 주체라면 이러한 형식에 대한 설명과 각각의 특성들에 대해 조금 더 무게감 있게 인지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건축, 인테리어, 가구 등의 일련의 표현적 특성이 있는 대상에서 ‘형식’의 문제는 ‘스타일’이란 개념과 동일시 할 수만은 없는, 보다 밀도 높은 내적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스타일, 형식이란 대상이 다양하고 복합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은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이러한 스타일, 형식이란 대상에 대해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행위 주체들에게 어떤 가치가 있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우리가 스타일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결국 스타일, 형식이란 대상은 어떤 의미 작용이 일어나는 대상으로서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이러한 스타일이란 대상이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해서 스타일이란 대상을 (의미와 무관하게) 무분별한 #재현 혹은 #복제 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 옳고 그름 또는 윤리적, 법적인 문제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 특히 요즘과 같은 이미지 중심의 매체와 정보로 가득한 환경에서 스타일에 대한 맹목적인 인식은 자칫 본연의 목적 행위 자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아름다움’이란 가치 명제 아래 스타일에 대한 무가치한 재현과 복제 행위는 미(美)의 대상이 아닌 추(醜)의 대상일 수도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추(醜) 또한 미(美)의 일부로써 미학적 대상임은 분명하지만, 집을 지으면서 추(醜)함을 스타일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일은 매우 특별한 경우일 것이다.

아뜰리에 비온후풍경 / OGL Architects, 고성 부띠크빌라 까사델아야
사진출처 : https://www.gallery-be.com/


어떤 연예인의 맵시 있는 패션이 유행하는 것은 사실 스타일의 문제가 아닌 단순한 유행, 이벤트적인 사건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때에 따라 ‘미메시스(mimesis)’ 자체를 미(美)의 대상으로 인식할 수 있지만, 동일한 방식, 유사한 느낌(형식)으로 반복되는 성형수술과 같은 행위를 미(美) 혹은 스타일의 개념으로 규정하는 것은 구분이 필요하다. 오히려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복제에 가깝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것들로부터 사실상 그 어떤 #의미작용 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자기만족일 뿐이며, 어떤 의미와 전혀 무관한 부유하는 기표이며, 기계적 코드에 가까울 수 있다.

그렇다고 성형외과 및 피부과적 행위를 무조건 반대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어떤 핸디캡 또는 신체의 물리적 리스크를 제거하기 위한 성형 외과적, 피부과적 조치는 분명 필요하다. 살펴보아야 할 것은 유심히 관찰해 보면 연예인들의 이러한 성형외과 및 피부과적 행위는 캐릭터의 고유한 분위기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말은 같은 성형외과 및 피부과적 행위라고 하더라도 기계적인 복제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는 의미이다. 좀 더 현실적인 이유는 성형외과 및 피부과적 행위가 영화 속 스크린(Screen)이란 필터를 통해 표현될 때 자칫 기계적인 복제로 비칠 수 있는 리스크를 감독들이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근래 연예인들의 성형외과 및 피부과적 행위의 주안점은 콧등을 세운다거나 깊숙한 쌍꺼풀을 만드는 것과 같은 형태, 혹은 형식의 문제보다 피부 자체의 물성적 가치(우윳빛 피부)에 더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경향이다. 이러한 행위가 UHD 화질과 스크린 속에서 스타일리쉬함을 표현하고자 하는 목적에 훨씬 더 유익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을 위한 집짓기든 특정 목적을 위한 상업적 공간이든 이러한 관점은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스타일이 문제를 어떤 형태나 형식적인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은 맹목적인 기계적 복제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손님들이 많이 찾기를 바라는 목적은 자칫 감독들이 선호하지 않는 스타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의미이다. 집짓기에서 스타일이란 대상을 잘 못 인지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논의를 지속하는 본연의 이유는 우리가 스타일에 관심을 두는 것은 궁극적으로 스타일이란 대상을 통해 일어나는 의미 작용이지, 스타일 자체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앞서 W. 타타르비키비치의 설명을 참조하면 이러한 스타일의 문제 자체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속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 대상이고, 이러한 모호성은 제거되기 쉽지 않은 대상임을 이미 설명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말하는 스타일이란 대상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 자신조차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지점에서 이와 연관된 현대의 사유체계들을 – 베르그송, 메를로-퐁티, 들뢰즈 등의 – 참조할 필요가 있다. 특히 메를로-퐁티(Merleau-Ponty)의 #지각 이란 개념을 중심으로 한 예술작품과 관련된 논의들은 유용한 참조의 대상이다. 물론 우리가 스타일이란 대상을 논하는 것이 #예술작품 이란 대상으로 한정하고자 함은 아니다. 하지만 대상에 대한 지각의 관점이란 측면에서, 예술작품이란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치환한다고 해서 지각이란 개념의 논리에 큰 문제가 생긴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메를리-퐁티의 논의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예술 작품의 의미 작용에 대해 ‘지각’을 중심으로 고찰하는 것인데, 방점은 ‘예술 작품’이 아니라 ‘지각’에 있다.

예술이 주는 즐거움이란 어떻게 그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데 있으며, 그것은 이미 기존의 획득된 관념들에 근거함으로써가 아니라, (영화처럼) 제 구성 요소의 시간적, 공간적 배열에 의한 것이다. 영화란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지각하는 것이며, 지각은 우리에게 영화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 메를로-퐁티(Merleau-Ponty) 저, 권혁민 역, 『의미와 무의미』 p89, 서광사, 1985

쉽게 말해 #영화 와 같이 어떤 대상을 경험, 감상한다는 것은 일종의 (신체적) ‘지각’이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스타일 혹은 형식이란 대상은 과거의 인식과 달리 어떤 논리, 이성 혹은 주관적인 감성 등의 문제가 아니라 오롯이 ‘신체의 지각 작용’을 통해 어떤 의미가 수반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메를로-퐁티의 논의가 중요한 점은 어떤 대상을 경험한다는 것은 어떤 인식이나 지성의 판단 작용이 아니라 (시각이 아니라) ‘지각의 차원에서 이루어짐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이러한 관점은 현대의 여러 가지 현상을 해석하고 사실을 인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그리고 스타일의 문제가 중요한 이유 역시 사실은 스타일 자체의 문제보다는 스타일이란 대상이 어떻게 의미 작용이 일어나는지가 훨씬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메를로-퐁티에 의하면 회화란 바깥 세계의 그대로의 재현도 아니고, 화가 내부에 있는 어떤 것의 표출도 아니다. 그것은 화가가 세계를 지각하는 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으로서 보이는 세계의 복사도 아니고, 화가 개인의 주관성 표현만도 아니다. 일종 화가의 스타일로서 고유한 하나의 방식이다.**

정소라, 『메를로-퐁티의 예술론 연구 : 신체 지각에 의한 미술작품의 창작과 감상』, p73~74,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14

결국, 스타일이란 대상은 어떤 주체의 지각적 표현의 관점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엄밀하게 주체의 신체적 지각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며, 이러한 주체의 신체적 지각마다 그 표현 방법이 다양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문제일 것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개념은 아니지만, 이러한 관점은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판단들에 대해 심각하게 숙고와 전향이 필요함을 의미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대목이다. 메를로-퐁티의 지각이란 개념 또한 한순간에 촉발된 것이 아니다. 가깝게는 후설의 현상학으로부터, 다소 멀게는 칸트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앞선 사유체계에 대한 의심과 비판에 대한 고찰 과정이었고, 무엇보다 당시 이성과 자의적인 합리성 중심의 사고에 대한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함에서의 출발이었다. 그리고 메를로-퐁티 이외에도 이러한 지각의 문제를 논하고 있는 사상가들이 적지 않다. 어떤 이들에게는 주체성마저 제거되는 개념에 이르고 있다. 메를로-퐁티 자신도 말년에 『지각의 현상학』에서 주체라는 개념을 한정한 오류를 인정하면서 ‘살’이라는 개념으로 오류를 극복하고자 노력하였다.

비온후풍경 / OGL Architects, 속초 스테이 오롯이
사진출처 : https://www.gallery-be.com/

스타일, 형식이란 대상의 의미 작용은 적어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다소 두루뭉술한 뜬구름 같은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점은 심사숙고해야 할 대목이지 않을까 한다. 특히 건축, 인테리어, 가구 등의 시각 중심의 디자인 분야에선 소위 ‘형태’, ‘형식’이란 관점 중심의 논의는 적지 않은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분명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개인을 위한 #주택 이란 #건축물 은 물론이고, 불특정 다수를 위한 상업적 활동과 목적이 있는 건축물이라면 우리가 그동안 인지하고 있었던 소위 형태, 형식에 대한 무분별한 재현이나 복제만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개인적으로도 상담과정에서 종종 어떤 스타일의 집을 짓고자 하는지 등의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질문을 하는 이유는 건축주가 생각하는 스타일에 대한 이미지를 재현하거나 복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답변을 통해 그 이면의 생각과 표현의 이면에 있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논의의 배경에는 그렇다면 과연 스타일, 형식이란 대상에서 의미 작용을 어떻게 구현할 것이며, 어떻게 목적하고자 하는 가치를 발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선문답 같은 대답일지 모르지만, 유추해 보면 대상에 대한 #이해 와 #공감 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 우선 그 대상이 포함하고 있는 세부적인 가치들을 파악함에 있어 어떤 특정 논리나 주관을 가장한 이성, 자의적인 판단이 아닌 사물과 신체에 작용하고 있는 지각과 의미 작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어야 한다. 흔히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일, 형식이란 것은 사람들 각자 신체의 지각을 통해 발현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스타일에 대한 생각들이 자칫 기계적이고 맹목적인 재현이나 복제의 대상이 되는 순간 우리가 의도하고자 하는 의미 작용은 절대 일어날 수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의도하고자 하는 의미 작용’이란 대상조차도 사실은 규정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메를로-퐁티에 의하면 예술 작품은 예술가가 구성한 의미의 집합이 아닌 예술가의 지각적 의미의 표현, 즉 침묵의 목소리와 같은 것임으로, 예술 작품의 의미는 타인이 지각하는 순간에 발생한다. 그러므로 예술 작품의 의미는 완결된 것이 아닌 발생 중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스타일, 형식이란 대상으로 말할 수 있는 모든 대상에도 적용 가능한 문제의식이다.

정소라, 『메를로-퐁티의 예술론 연구 : 신체 지각에 의한 미술작품의 창작과 감상』, p77,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14

주체의 지각을 통한 표현이란 대상이 타자의 지각을 통한 표현과 소통 가능한 공감작용이 – 일종의 접점으로써의 필요충분조건이 만족할 때 – 가능할 때, 그 공간과 장소는 새로운 의미의 공간과 장소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축에서 스타일, 형식이란 대상을 통한 의미 작용의 구현은 이해와 공감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이 건축 디자인의 궁극적인 가치가 발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스타일은 맹목적 재현이나 기계적 복제가 아닌 건축 디자인을 통해 가치 있는 의미 작용을 수반할 있는 대상으로 드러날 수 있다.


아뜰리에 비온후풍경 / OGL Architects


0 Comments

댓글 남기기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