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성 이란 개념은 사실 거대담론으로 쉽게 언급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집짓기 에서 보편성을 언급하는 이유는 집에 대한 어떤 큰 이야기들을 언급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히려 #소규모주택시장 이 처하고 있는 왜곡된 문제점 등으로 인해 최소한의 기본적인 것들조차 지켜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미흡하지만 가치 회복에 대한 의미를 언급하고자 함이다. 더불어 #집 에 대한 특별한 감정일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좀 더 차분하고 소소한 일상적 가치에 대한 의미를 찾아보고자 하는 관점에서의 보편성이다.

우리의 소규모주택시장의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글 이라 할 수 있다. 정글은 자연생태계라는 관점에서 지극히 안정된 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도시를 살아가는 인간의 관점에서는 상대적으로 불안정하고 위태롭게 느껴지는 대상이 정글일 것이다. 아마도 아마존의 원주민 일부를 제외하곤, 정글은 분명 이성보다는 본능, 삶보다는 생존의 대상으로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한다. 문제는 우리의 소규모주택시장의 상황은 믿기 어렵겠지만 충분히 아마존의 정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집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특별하다 못해 애가 타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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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에서 보편적 집짓기라는 필요성을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다. 보편적 집짓기가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왜 보편적 집짓기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우선 필요할 듯하다.

우리에게 집이란 대상은개념은, 주거라는 유사한 개념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의 속성이 다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집과 집짓기는 오롯이 개인(나)을 위한 집과 집짓기라는 뉘앙스가 강한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다소 개선의 여지가 필요한데, 집과 집짓기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집짓기라는 생각에 앞서, 사회구성원 중 한 사람인 내가 짓는 집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집짓기 장소는 도시의 일부인 소위 #주택단지 라는 점에서 타인과 함께 어울려 사는 방법이며, 비도시역 또한 집을 짓는 장소 대부분이 소위 전원주택단지라는 일종의 마을의 일원으로 집을 짓는 것이다. 이러한 주택단지가 아니라 하더라도, 도시든 시골이든 대부분의 집짓기는 기존의 주택 및 #마을 들과 전혀 관계가 없을 수 없다.

더불어 평생 내가 살 집이란 생각으로 애착을 갖게 되는 것이 집이란 대상이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부지기수며, 어떤 이유로 살다가 집을 팔고 이사를 해야 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집의 수명은 나의 수명보다 훨씬 길다. 내가 죽고 나면 나의 자녀들이 그 집에서 살 수도 있는 것이며, 때에 따라 가족이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 그 집에서 다시 평생을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왜 보편적 집짓기이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살펴본 바와 같이 집이란 대상은 주거라는 공공적 가치 속에서 집을 짓고 있다는 점이다. 공공적 가치라고 해서 사회주의적인 절대성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친밀한 공감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더불어 사는 구성원들 간의 최소한의 질서와 공동가치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그래서 비록 내가 내 돈을 내고, 나를 위해 짓는 집이라 할지라도, 집에 대한 사회적 가치와 공공성이란 범주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집을 짓는 품격있는 모습이다. 더불어 우리의 사회적 현실은 집짓기와 관련된 세부적인 제도와 시스템이 다소 부족한 편이지만, 엄연히 나와 타인의 관계 속에서 집을 짓는 것이니만큼, 집은 나 혼자, 내 마음대로 짓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소 경솔한 태도일 것이다. 그렇다고 집짓기의 소중한 경험과 사적인 소박한 행복마저 포기하고자 함은 아니다.

과거 한때 #단독주택 이란 대상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근래의 단독주택을 짓고자 하는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소소한 가치를 추구하는 일반 시민들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경제적 여유가 충분해서 집을 짓겠다는 건축주는 아직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 저마다의 상황과 목적에 따라 고만고만하고 소소한 이야기들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짓기비용 이라는 대상은 왜곡된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싸다 비싸다의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 기준과 표준화된 기술이 부재하며, 공급자들의 체계적인 관리가 시스템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관계로 인한 비용의 불투명성의 문제이다. 보편적 집짓기이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집짓기 비용의 투명성과 합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품질을 고려한 합리적인 비용이라는 문제일 것이다. 현재 주택시장에서 형성되어 있는 소위 단독주택 공사비는 평당 350만 원부터 평당 800만 원까지 그 편차가 너무나 현격하다. 물론 그 이상의 범주도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이는 보편적인 집짓기의 대상이 아닌 특별한 집짓기의 대상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도대체 주택시장에 이러한 비용의 편차를 일반인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적어도 한쪽은 사기꾼이 되기에 십상이다. 아무리 이런 집이 있고 저런 집도 있을 수 있겠지만, 3배에 달하는 #주택공사비 의 편차는 사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아마 이 부분에 관한 내용만으로도 책 한 권은 족히 쓰일 수 있을 듯하다. 어쨌든 이렇게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비용의 문제에 대해 합리적인 기준과 설명이 필요한 것 또한 보편적 집짓기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무조건 싸게 짓겠다는 것이 아니라, 기준과 이유가 명확해야 비용을 더 내든 들 내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 집짓기이어야 하는 마지막 이유는 단독주택에 관한 관심과 수요가 지속해서 늘어나고 있음에 반해 이에 부합하는 사회적 체계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파트와 비교해 보면 아파트의 장만 과정은 집짓기보다 상대적으로 쉽고 간명한 편인데, 이러한 이유는 아파트와 관련된 사회적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가 좋고 나쁨을 떠나 아파트란 대상은 어쨌거나 사회적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이에 비해 집짓기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조차 막연하고 어려운 대상이다. 녹색 검색창과 더불어 어렵게 공부를 시작하지만 별의별 말들이 난무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며 혼란스럽기까지 한 것이 현재 우리의 집짓기이다. 괜히 정글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은 한마디로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이며, 집짓기의 사회적 시스템은 우리가 아프면 병원에 가고 필요하면 약국에 가는 것처럼 특별한 행위가 아닌 보편적 행위로 인식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나의 선택에 따라 어느 병원을 가든 어느 약국을 가든 선택권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정리해 보보편적 집짓기가 필요한 이유는 집에 대한 개인과 공공적 가치의 조화가 필요한 대상임이 첫 번째일 것이며, 주택 장만에 드는 비용의 합리적 기준의 문제가 두 번째이며, 늘어나는 단독주택 등 다양한 주거문화의 수요에 비해 사회적 시스템 부재로 인한 시장의 불건전성에 대한 건강성을 확보해야 힘이 세 번째 이유이다.

다시 말해 현재의 소규모주택시장의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며, 이러한 개선의 지향점을 보편적 집짓기란 가치로 설명하고자 함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보편적 집짓기는 무엇이며,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결론부터 언급하자면 보편적 집짓기에서 집에 대한 기준은 ‘합리적 감성’과 ‘디자인과 기술의 균형’을 갖춘 집이며, 이러한 기준을 근간으로 집을 짓는 일련의 방식을 보편적 집짓기라고 할 수 있다. 보편적 집짓기를 구성하는 4가지 키워드는 #합리성 #감성 #디자인 #기술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키워드들은 단순히 나열된 개별적인 요소가 아닌, 상호 다차원적인 관계성을 가지는 유기적 관계들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집은 어떤 면에서 부품들의 조립을 통해 생산된 자동차나 거주함을 위한 기계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집의 품질과 사용자의 만족도는 자동차에 대한 만족도를 평가하는 방법보다 다차원적인 해석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집짓기에서 합리성이란 우선 주거라는 방식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관계 설정 문제가 있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합리성이란 건축주나 건축가 모두에게 다소 주관적인 경향이 다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의 합리성에 대한 기준과 사회의 합리성의 기준은 종종 일치되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러한 상치 지점에서의 적절한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합리성의 중요한 대상이지 않을까 한다.

나의 아이들에 대한 소중함을 타인의 아이들과 차이를 통해 어떤 특별함을 부여하고자 하는 생각은 위험한 생각일 것이다. 나의 아이들이 소중하다면 공동체 속에서 함께 부대끼며 어울릴 수 있으며, 사회적 틀 속에서 주체적이고 정의로울 수 있는 아이들로 성장해 갈 수 있는 것을 더욱 자랑스러워서 할 것이다. 집이랑 대상 또한 우리의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까 한다.

더불어 이러한 합리성의 대상에는 무엇보다 비용이 문제가 중요할 것이다. 보편적 집짓기에서 비용의 문제는 단순히 저렴해야 함을 의미할 수 없다. 주택의 공학적 품질은 개인이 임의로 판단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동네 집 장사들이 이 정도면 충분하다든지, 개인 목수들이 이 정도 하면 아무 문제 없다든지 하는 말은 품질의 기준이 될 수 없다. 품질이란 의미는 객관성 그 자체이며, 사회적 시스템 속에서 공인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비용의 합리성은 이러한 품질이란 객관성을 근간으로 하는 적정 비용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가 건축주이기 때문에 이러한 객관적 품질을 무시하고 집을 지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물론 지금은 가능한 이이지만 사회적 시스템을 통해 이러한 부분은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쉽게 말해 동네 집 장사나 개인 목수들이 짓는 집의 비용보다는 비싸져야 하며, 건축가의 작품과 같은 집보다는 비용이 다소 낮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집짓기는 건축주의 입장이나 집을 짓는 사람들의 입장 모두 상당한 밀도와 에너지가 필요한 대상이다. 이러한 밀도는 당연히 압력과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예민해지고 민감해지기 쉽다. 평상시 같으면 충분히 대화로 설명할 수 있는 대상도, 집짓기 과정에서는 말이 아닌 데이터와 근거가 필요한 대상이며, 종종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음에 대한 마음이 준비도 필요하다. 그리고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빈번할 수 있는데, 담담하게 대안을 찾아갈 수 있는 지혜와 품격이 또한 필요하다. 더불어 집짓기 과정에서 이러한 긴장감을 어느 정도 즐길 수도 있는 멘탈 관리도 필수이겠지만, 무엇보다 시스템을 통해 이러한 긴장감을 완화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아파트를 장만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구매를 결심하기 전까지 많은 생각이 필요할지 몰라도, 적어도 구매를 결정하고 계약금 지급하고 나면 사실 특별히 할 일이 없다. 물론 이러한 방식이 옳은 것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아파트란 시스템에 의해서 아파트는 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이러한 집짓기 과정에서 일련의 시스템은 우리의 아파트 시스템보다 훨씬 더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정작 감성이 필요한 부분은 짓고자 하는 집 자체에 대한 생각들일 것이다. 사실 집짓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집을 짓는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하다. 이 또한, #건축주 와 #건축가 모두에게 해당할 수 있는 문제인데 소위 ‘소확행’이라고 불리는 집에 대한 소소하지만 구체적인 다양한 생각들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흔히 말하는 인문학적 감성이라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특별한 공간과 형태의 특별한 집을 추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집에 대한 관점이 잘못된 관점이라기보다는 보편적 집짓기의 범주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특별한 집을 추구한다면 적절한 비용을 지급하고 얼마든지 특별한 집짓기를 할 수도 있다.

건축에서 건축디자인에 대한 문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한 대상이지만, 보편적 집짓기에서 디자인은 합리성과 감성, 기술 등, 집짓기와 관련된 일련의 내용과 문제점들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가는 프로세스 그 자체를 의미한다. 종종 건축디자인은 예술의 대상으로 간주하기도 하고, 형태적인 대상으로 간주되거나 정반대로 인허가를 위한 행정절차 수준으로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내용은 디자인 과정에서 포함되어야 하는 문제임은 분명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아닐 것이다.

디자인에 대해 건축가들은 종종 새로움, 아이디어, 디자인적 가치 등에 입각한 소위 창조적인 사고를 추구하지만, 이는 종종 사변적인 이론적 논거를 건축물에 투영시키는 모습으로 귀결되기도 하며, 건축가의 주관적 혹은 개인적 성향에 한정되기도 한다. 보편적 집짓기에서 디자인은 이러한 관점과 전혀 무관하게, 표준화된 각종 기술 요소들을 재통합하여 거주환경에 대한 #프로토타입 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사용자의 유형과 사회적 환경에 따른 합리적 감성이란 기준을 공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보편적 집짓기의 디자인이 추구해야 할 가치이다.

그리고 이러한 보편적 집짓기의 핵심 중 하나는 기술이란 부분에 있다. #주택 이란 집짓기에 사용되는 기술 수준은 사실 첨단기술 아니다. 현재의 건축공학 수준을 생각하면 지극히 일반적인 기술 수준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기술과 기술의 체계성이 현장에서 일반화되지 못한 이유는 기술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설명한 바와 같이 단독주택 등 소규모주택 시장에서 적용되는 기술 수준은 천차만별이며 정글과 다름이 없는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이유 중 하나는 기술에 대한 #표준화 와 이러한 표준화를 실현할 수 있는 체계성의 미흡함일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기술을 적용함에 있어 보편적 집짓기라는 범주를 고려한 적절한 기술을 적용하는 디자인 방법론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점 또한 쉽지 않은 부분이다. 일례로 보편적 집짓기 범주에서 가장 널리 활용되는 목구조는 건축설계사무실에서 디자인 행위를 통해 개입, 통제, 관리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없는 실정이다. 디자인은 했지만 구조도면은 생산할 수 없는 것이 현재 건축설계사무소의 역설적인 상황이다. 당연히 현장에서도 감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건축주는 이미 착공신고 시 감리자를 선정하여 감리비를 지급하지만, 감리자가 목구조에 대해 실질적인 감리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한 현실이다. 이 또한 기술에 대한 표준화가 필요함이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의 표준화는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건설 방법 자체에 대한 고민을 포함해야 할 것이다. 기준을 위한 기준이 되거나, 행정절차를 위한 기준이 아닌 실효성 있고 실질적인 기준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보편적이라는 가치가 기계적이고 직능적인 관점만을 강조하는 것 또한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표준화는 품질의 객관성을 위한 개념이지 획일적인 집을 짓고자 하는 의미가 아니다. 표준화된 기술은 오히려 디자인의 다양한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궁극적인 원동력이다.

비온후풍경 / OGL Architects, 양평 전원주택 단지
사진출처 : https://genius-partners.com/


합리적 감성과 디자인과 기술의 균형을 갖춘 집, 즉, 합리성, 감성, 디자인, 기술이란 대상은 보편적 집짓기를 구현하는 중요한 가치들이다. 그리고 보편적 집짓기란 집에 대한 어떤 개념적을 추구하거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인 주거라는 범주 속에서의 개인의 다양한 공간과 장소적 가치들을 구현하고자 함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보편적 집짓기는 단순히 계획과 미의 관점에 머무는 디자인이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과 제작 및 건설 방법을 포함할 수 있는 실질적인 디자인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합리적이고 건강한 집을 짓고자 하는 것이 보편적 집짓기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더불어 소규모주택시장에서 여러가지 미흡한 상황에 대한 일종의 개선점이며, 최소의 가치들이 결핍되어 발생하는 불합리성에 대한 체계성을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보편적 집짓기의 가치가 실현될 수 없다면, 사실 특별한 집짓기 또한 실현될 수 없는 대상일 것이다. 아마 있다면 아마 건축가 지은 집이 아니라 화가가 지은 집일지도 모른다. ​



아뜰리에 비온후풍경 / OGL Archit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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