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Design 과 #설계 #設計 라는 개념은 사실 같은 개념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상황에 따라 다소 다른 의미 혹은 다른 뉘앙스로 사용되는 때도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단독주택 등 소규모건축물 시장에서 #건축설계 (設計)의 중요성에 대해 과거에 비하면 많은 인식의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라는 문장은 (문장의 의미 내용을 떠나) 일반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단독주택 등 소규모건축물 시장에서 #건축디자인 (Design)의 중요성에 대해 과거에 비하면 많은 인식의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라는 표현은 상대적으로 잘 쓰지 않을뿐더러 조금 다른 뉘앙스를 표현하는 문장이 된다.

디자인과 설계의 관계는 서양의 개념이 우리에게 전래 되면서 설계라고 번역된 표현의 문제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번역 과정에서 문화적 차이에 의해 표현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의미도 다소 변이되는 경향이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현상은 건축만의 경향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의 전래와 번역의 문제가 우리에게 있어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닌 것은 우리의 번역이 주체적인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일어난 번역이라는 점이다. 사실 강제 이식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아직도 이러한 강제 이식된 개념에 대해 올바른 의미의 회복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가장 객관적인 지표 중 하나인 법률과 사전의 의미에서조차 이러한 양상은 여실 없이 드러난다. 당장 법률만 살펴봐도 비슷하지만 묘하게 다른 정의를 발견할 수 있다. 건축사법 제2조에서는 ‘설계란 자기(건축사) 책임 아래 건축물의 건축, 대수선(大修繕), 용도변경, 리모델링, 건축설비의 설치 또는 공작물(工作物)의 축조(築造)를 위한 다음 각 목의 행위를 말한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건축기본법 제3조에서는 ‘건축디자인이란 품격과 품질이 우수한 건축물과 공간환경의 조성으로 건축의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건축물과 공간환경을 기획, 설계하고 개선하는 행위를 말한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위 두 조항만 비교해 보면 #설계 (행위)란 직능적인 대상이며 #디자인 (행위)에 비해 품격과 품질, 공공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뉘앙스가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차이를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일상적인 범주에서도 디자인(Design)과 설계(設計)는 묘하게 다른 뉘앙스로 사용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일종의 도플갱어(Doppelganger)***와 같은 관계이다.

*** 도플갱어(Doppelganger)는 세상 어딘가에 걸어 다니는 외모가 똑같은 사람을 뜻이며, 눈앞에 자기 자신이 나타난다는 괴현상을 의미하기도 함.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위키백과에서는 ‘설계(設計)는 공학, 특히 토목, 건축, 기계, 전기, 전자 분야에서 목적물을 만들거나 변경, 해체하는 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일로, 도면이나 각종 계산서, 산출내역서, 시방서 따위를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일을 통틀어서 설계라고 부르기도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디자인은 다양한 사물 혹은 시스템의 계획 혹은 제안의 형식 또는 물건을 만들어내기 위한 제안이나 계획을 실행에 옮긴 결과를 의미하며, 또한 이것들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추가적인 설명으로 일원화된 디자인의 정의는 존재하지 않으며,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각자 다른 분야에서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고 응용되고 있다. 실질적으로 만져지는 물건을 창조하는 행위나 그 행위의 결과 역시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디자인은 디자인되는 물건이 디자인되는 방법과 이에 참여하는 개인과 참여자의 분야, 그리고 그 다양성에 따라 많은 다양한 방법과 형태가 존재한다’라고 부연하고 있다. 디자인에 대한 일련의 개념들을 종합해 보면 ‘디자인은 대상에 대한 계획, 제안, 결과, 제작 등을 위한 방법론’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전에서의 개념조차 조금 다른 뉘앙스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디자인은 상대적으로 포괄적인 범주이며, 설계란 개념은 계획이란 부분에 한정된 듯한 뉘앙스가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디자인과 설계라는 개념과 대상은 다른 것일까. 디자인과 설계의 미묘한 차이는 역사적 배경을 함께 고려해야 그 간극을 명확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설계와 디자인에 대한 이러한 미묘한 차이는 제도화 과정에서도 유사한 양상을 나타낸다. 건축사법은 1963년 제정 시행된 법률이며, 건축기본법은 2008년 제정 시행된 법률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개념이 달라졌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궁극적인 원인은 디자인이란 대상을 설계라고 번역하면서 발생한 차이일 것이며,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적 환경에 의한 일정 부분 오류도 있을 것이다.

즉, 디자인을 디자인이라고 불렀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을 디자인을 설계(設計)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환경이 결국 디자인과 설계를 전혀 다른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 요인이라는 것이다. 건축이란 개념도 마찬가지이다. Architecture를 아키텍처라고 불렀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을 Architecture를 건축(建築)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환경이 결국 아키텍처와 건축을 다른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 요인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주체적인 번역이 아니라 일제강점기를 통해 이식된 번역이라는 특수성이 있다. 그리고 이후 소위 조국 근대화 과정에서 이러한 오류의 폐해는 더욱 심각한 양상을 만들게 되었다.

1963년 건축사법이 제정될 당시 디자인이란 말이 보편적이지도 않았을뿐더러,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에 의해 번역된 개념을 – 이 자체에도 문제점은 있다 –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차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비판적일 겨를도 없었고 뭐가 뭔지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시절이었다. 오히려 문제는 2008년 건축기본법이 제정될 시기에도 여전히 디자인에 대한 오롯한 의미는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닐까 한다. 디자인을 설명하면서 품격이란 개념이 등장하는 점 또한 의아스러우며, 건축 디자인의 대상을 공간환경으로 한정한 점 또한 아쉬운 대목이다. 무엇보다 문제는 계획, 제안, 결과, 제작 및 방법론 등의 다양한 디자인 대상을 계획이란 측면에 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건축디자인이란 범주를 다소 편향적인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우며, 설계와 디자인의 경미하지만 미묘한 간극을 통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 이상의 문제점이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계획이란 대상으로 디자인을 한정하면서, 건축의 확장성을 스스로 단절하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디자인이란 대상을 다루고 있는 다른 분야의 (건축가 아닌) 주체들은 #플래너 #공간디자인 #실내건축 #도시건축 등의 이름으로 스스로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음에 비해, 계획적 가치를 중심으로 디자인을 한정한 건축디자인은 갈수록 스스로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건축에서도 인공지능이니, 빌딩 정보 모델링(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BIM)이니, 파라메트릭 디자인(Parametric Design)이니 하는 것을 논의 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지만, 계획 중심의 건축디자인에 대한 한정된 개념은 건축의 발전적 모습에 오히려 반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계획 중심의 디자인 개념은 이러한 BIM이나 파라메트릭 디자인과 같은 분야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은 계획, 제안, 결과, 제작, 방법론 등 일련의 과정에서 상호 다차원적인 관계성을 갖는 #건축디자인 본연의 모습을 계획이란 범주에 한정시킨 결과이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계획이란 의미 자체도 오롯한 의미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일제강점기 이후 이식된 우리의 건축 및 건축 설계 분야는 아직도 건축디자인의 가치를 건강하게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계획’ 중심의 건축디자인에 대한 한정된 개념은 디자인이란 대상을 조금 특별한 가치로 여기게 되는 착시효과를 통해 신비로운 건축가상을 양산하면서 일시적 혹은 부분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전술일지 모르지만, 디자인과 분리된 설계라는 개념이 여전히 직능적이고 기능적인 의미로만 남겨져 있는 한 우리의 디자인(설계)산업은 원천적인 원동력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디자인과 설계라는 대상은 디자인과 설계가 다르지 않은 하나의 관점으로 오롯한 의미 회복이 필요하다.

디자인에 대한 불완전한 해석은 소규모건축 시장에서도 디자인과 설계의 미묘한 차이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디자인(설계) 비용으로 인지도 있는 디자이너 선생님께(건축가) 몇천만 원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그나마 품격과 공공성이란 명분이라도 얻을 수 있지만, 설계사(건축사)에게 몇천만 원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왠지 합당하지 않은 듯한 왜곡을 불러일으킨다.

디자인(설계) 비용의 문제는 건축가냐 건축사냐 하는 문제도 아니고, 몇천만 원을 내느냐, 몇백만 원을 내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계획, 제안, 결과, 제작, 방법론 등 디자인 행위에 대한 객관적 가치평가에 따라 비용을 책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디자인과 설계의 간극만 있을 뿐 객관적인 지표나 설계 및 디자인과 관련된 체계의 문제는 여전히 요원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반복적인 악순환으로 건축 설계(디자인)업은 피폐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

어떤 건축사들은 올해 설계 인허가건수를 몇 건 이상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나름의 생존 전략을 마련하게 된다. 지역 부동산에 전단지를 뿌리기도 하고, 얼토당토않은 개발업자의 전원주택 사업을 위해 비장의 스케치업 기교를 발휘해서 조감도를 작성해 주기도 하며, 몇십 개라도 해주면 한 개는 되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시행사 뒷바라지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건축가들은 매체에 얼마만큼 작업을 노출시켜, 유명세 있는 소위 스타건축가를 꿈꾸는 전략을 수립하며, 유명세가 디자인(설계) 비용을 결정한다는 인식을 갖기도 한다. 이를 위해 완공 건축물이 하나라도 있으면 젊은 사진가들의 신묘한 사진술은 필수적인 과정이며, 어렵게 수주한 프로젝트 하나를 놓고 성형외과 의사 못지않은 변신의 귀재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성형기술을 디자인(설계)이라고 착각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명함 한쪽에 공공건축가 타이틀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도플갱어가 따로 없는 것이다.

디자인(설계) 산업은 고사하고 당장 삶을 걱정해야 하는 디자인(설계) 주체들의 일상적 풍경이다. 디자인(설계)에 대한 오롯한 의미 회복과 더불어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통해 디자인(설계)에 대한 산업으로 가치가 전향되지 않는다면 디자인(설계)의 앞날은 암울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냉철하게 규명 – 이러한 생각조차 사치일 수밖에 없는 것이 디자인(설계) 주체들의 상황이다 – 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계획 중심의 건축디자인에 대해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다양한 접근이 이루어져할 것이다.

BIM, 파라메트릭 디자인 등과 같은 대상은 전혀 다른 관점의 건축 디자인(설계) 방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혀 다른 새로운 가치를 자의적이고 구태의연한 디자인(설계)에 대한 관점으로 접근할 수가 없다. 또한, 단독주택 등 소규모건축물 시장은 다른 분야에 비해 계획, 제안, 결과, 제작, 방법론 등의 디자인 행위 대상들이 상대적으로 긴밀하고 촘촘한 관계성을 요구하는 분야이다. 이러한 필요성을 일본의 공무소나 하우스메이커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시도 또한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관점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접근될 수 있어야 한다. 실제 몇몇 젊은 건축가들의 색다른 접근 방법들이 흥미로운 모습으로 구현되는 사례들이 있으며, 이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사회적 시스템은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건축디자인 본연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건축만의 문제가 아니라 #건설산업 전체와 연계한 #시스템 전환이 필요한 부분이다. 시스템 전환은 ‘포맷’이나 ‘리셋’ 등과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전환이 아닌, 디바이스 자체의 새로운 아키텍처링이 필요한 대상이다. 386 칩셋으로는 지금의 시스템을 계산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BIM과 파라메트릭 디자인과 같은 대상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이러한 사회적 시스템 전체에 대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소규모건축물 시장의 심각한 문제들 또한 기존 건설산업과의 새로운 관계성과 가치 정립이 필요한 부분이다. 종합건설로 대표되는 건설산업은 근대화 과정에서 톡톡히 제 몫을 다했지만 그만큼 폐해도 적지 않은 분야이다.

디자인과 설계의 미묘한 차이는 그 차이가 경미하다고 해서 혹은 그 의미가 대수롭지 않다고 해서 그냥 넘겨버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도플갱어적 현상은 일종의 괴현상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며, 정신분열증을 표상하기도 한다. 그리고 걸어 다니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순간 나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전설이기도 하다. 디자인과 설계는 도플갱어적 관계가 아닌 오롯이 #건축디자인 #Architectural Design 의 의미를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아뜰리에 비온후풍경 / OGL Archit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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