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과 같은 소규모건축물 시장 상황도 혼란스럽지만, 집짓기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지 않을까 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집은 내(건축주)가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업무상 필요 때문에 어떤 소프트웨어를 배울 수도 있고, 필요에 따라 어학원 등을 다니면서 스스로 부족하거나 배우고 싶은 대상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부족한 요리실력이지만, 검색으로 얻은 비장의 조리법을 필사해서 어느 정도 흉내 내어 가족들의 저녁 한 끼 정도는 직접 요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집짓기는 어디 학원에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요리처럼 특별한 비결이 어디 있는 것도 아니며, 설령 있다고 해도 내가 직접 집을 짓는다는 것은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라면 쉽게 도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집짓기가 어렵고 혼란스러운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대상에 대한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고, 체계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체계적이라 하기에도 다소 모호하다. 한마디로 불투명한 대상이라는 점이다.

사진출처 : 비온후풍경


결국, 머지않아 집짓기는 대리부와 대리모가 필요한 대상임을 인식할 수 있다.

용어의 부정적인 뉘앙스도 다소 있지만 여기서 대리부, 대리모의 개념은 유전공학과 같은 기계적인 뉘앙스를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자식(집)을 낳고 싶지만, 생물학적 생식이 불가능할 경우 인공적인 기술을 통해 자식을 낳을 수 있는 시대임을 고려하면 스스로 집을 지을 수 없는 건축주의 상황과 매우 흡사한 상황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집은 내가 짓고 싶다고 무조건 짓는 것이 아니라, 소소하게는 집 짓겠다고 나라에 신고하거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며, 인허가 절차 이후에도 규모에 따라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법령에 따라 종합건설이란 시공사가 집을 지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집주인으로서 계약서상 소위 ‘갑’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직접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이 외에도 소소하게 전기 공사를 하는 일도 특정 자격 이상의 업체가 대행해야 하며, 하다못해 60만 원짜리 정화조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며, 도시가스나 주차장 같은 아주 당연한 대상들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집짓기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적 대상이 아니더라도 주택의 품질이란 관점에서 기술적인 내용이 훨씬 많이 산재하고 있는 것이 집짓기이며, 이러한 것들이 훨씬 더 중요한 것들일 수 있는 것이 집짓기이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거주할 집에 대한 공간을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만들 것인지부터, 그래서 지어진 집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하는 더욱 중요한 문제들도 얼마든지 산재해 있는 것이 집짓기이다.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러한 내용에 관해 ‘집짓기 공부’라는 명목으로 너무나 열심히 공부하는 (예비)건축주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집을 짓고 있는 와중에도 하루 잠시 현장을 방문하여 찍은 현장 사진을 커뮤니티 게시판에 업로드하며, 이것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확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실시간 중계에는 수많은 댓글로 갑론을박 왁자지껄하는 장면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장면은 아마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풍경이 아닐까 한다. 사실 건축주가 집에 관한 공부가 필요하다면 정작 공부해야 할 대상은 이러한 대상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관련 전문가들이 판단하고 검증해야 하는 대상이지 인터넷 커뮤니티로 해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물론 우리나라 네티즌들의 수준은 상당하다. 종종 꽤 수준 높은 댓글과 해박한 갑론을박이 전혀 없는 것 또한 아니다.

어쨌거나 이러한 장면은 두 가지 경우이지 않을까 한다. 하나는 대리부와 대리모의 필요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두 번째는 잘못된 대리부와 대리모를 만났을 때의 상황이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이러한 대리부와 대리모를 다른 말로 바꾸면 각각 설계자와 시공자일 것이다. 집짓기에서 이러한 대리부와 대리모가 중요한 이유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건축주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면 누군가 이러한 일련의 집짓기와 관련된 일들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함은 당연할 것이다.

여기서 또 다른 주체가 필요함을 인식할 수 있는데, ‘집도의’의 개념이다. 대리부와 대리모는 스스로 어떤 행위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집도의를 통해 인공수정을 하든, 유전자 조작을 하든 어떤 행위가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이 있다. 설계자와 시공자까지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집도의라는 개념은 집짓기에서 어떤 의미일까 하는 점이다. 이 부분은 집짓기에 대한 시스템과 관련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건축가 혹은 설계자의 역할과 관련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서 집도의의 개념은 집짓기 프로세스 전체를 주도적으로 선도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행위 주체라는 의미이다.건축가는 설계 행위뿐만 아니라 설계 단계 이전, 이후의 집짓기 프로세스 전체에 대한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현실적으로 ‘건축가 = 설계자’라는 등식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 건축사법 및 설계 주체들은 저마다 집짓기에 관련된 업무 범위를 각자 조금씩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우선 건축사법 측면에서는 건축사(가)의 역할을 도면생산이란 영역에 한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도면생산 이외의 업무는 건축사(가)의 업무 영역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물론 감리라는 행위가 있지만, 이 또한 도면생산과 연계된 범주의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집짓기와 같은 소규모건축물 시장에서는 설계도면만 있다고 해서 시공행위나 기타 집짓기와 관련된 여러 가지 내용이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한 생각이다. 건축사법은 지극히 대형 프로젝트 중심의 내용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법령과 무관하게 설계자들의 인식 또한 설계자의 성향 및 가치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상대적으로 건축주들이 기대하는 집짓기에서 가장 필요한 대상은 ‘조력자’의 개념이다. 설계도면 생산의 문제를 포함하여 집짓기 과정 전체에 대한 여러 사항을 종합적으로 조력할 수 있는 역할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집짓기란 행위가 건축주가 직접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면 누군가 주도적으로 일련의 집짓기 과정을 체계적으로 조력할 수 있는 주체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설계 전문가, 시공 전문가 등 이런저런 전문가는 많은 듯하지만, 집짓기 프로세스 전체를 합리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조력자라는 대상은 현실에서 부재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여러 가지 건축가의 역할 중 이러한 전체 프로세스를 합리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전문가의 역할이야말로 건축가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일 것이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20181225_1 앙코르와트 일출 (8).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535pixel, 세로 2048pixel

사진 찍은 날짜: 2018년 12월 25일 오후 6:26

카메라 제조 업체 : Apple

카메라 모델 : iPhone 7 Plus

프로그램 이름 : 12.1

F-스톱 : 1.8

노출 시간 : 1/20초

IOS 감도 : 40

색 대표 : sRGB

노출 모드 : 자동

35mm 초점 거리 : 28
사진출처 : 비온후풍경



앞서 건축주, 집도의, 대리부, 대리모의 관계는 집짓기 현실에서 건축주, 건축가, 설계자, 시공자의 관계이다. 다른 버전으로 축구경기의 구단주, 감독, 공격수, 수비수라는 비유나 영화에서 제작자, 감독, 작가, 배우라는 비유, 대중음악에서 제작자, 프로듀서, 작곡가, 가수라는 비유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100% 일치할 수 없겠지만 집짓기란 범주에서 주요 주체들의 역할론에 대한 이해 정도로 생각하면 유용할 것 같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는 한 팀의 리더가 얼마나 중요하며 소기의 목적과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해 충분한 투자와 적지 않은 사전 준비가 필요한지를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다. 감독을 중심으로 선수, 전문 스텝들, 각종 지원 그룹 등이 한 팀으로 똘똘 뭉쳐 오랫동안 준비한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전략이나 전술 없이 막연하게 정신력과 투지를 강조하던 이전의 모습에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상들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줄 수 있었던 사건이지 않을까 한다. 무엇보다 각자의 본분에서 각자의 본분에 맞게 무엇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 부족한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이러한 것들을 보완할 수 있는지 등의 문제는 비단 축구경기에 한정된 사항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즐겨 듣는 대중음악 상당수 또한 제작자의 판단과 프로듀서의 기획력, 작곡자, 작사가의 설계를 기반으로 시공자의 노래를 통해 완성되는 일련의 집짓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대상이다. 영화라는 대상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축구경기든 대중음악이든, 영화든 제작자의 투자와 전문 관리자의 관리 역량 및 여러 전문 엔지니어와 스텝들의 협업을 통해 탄생하는 체계적으로 총체화된 대상이다. 건축가 장 누벨 (Jean Nouvel)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건축가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더는 예술가가 아니며 오히려 영화감독에 비유하고 있다. ***

*** 장 보드리야르, 장누벨 저, 배영달 역, 『특이한 대상, 건축과 철학』 p16, 동문선, 2003

이러한 대중문화와 우리의 집짓기 현실을 비교해 볼 때, 산업화한 문화상품의 생산양식에 비하면 우리의 소규모건축물 시장의 집짓기 방식은 아직 조용필이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던 시절과 유사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앞서 게시판이 활활 불타오르고, 박람회장을 드나들며 집 한 채 짓기 위해 머리 싸매고 공부해야 하는 건축주의 모습들은 구단주가 직접 운동장에서 선수 대신 뛰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고, 막연하게 정신력과 투지만을 강조하던 그 옛날 국가대표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집짓기와 주거문화는 누구 한 사람 혹은 한 사람의 독창성으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전문가 집단의 협력 작업을 통해 생산될 수밖에 없는 나름 복합적이고 체계적인 사회적 대상임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대중음악과 상업영화 시장에는 대규모로 조직화하고 기획된 종합 매체 이외에도 각자의 색깔과 정체성을 추구하는 인디밴드 및 싱어송라이터도 있으며, 그냥 음악이 좋아서 관련된 작업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뮤지션 등 뜻밖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집짓기 시장 역시 대형자본이 투자된 분양시장도 있고 중소 시공사가 주축이 된 하우징 회사도 있으며, 지역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집을 지어주고 대가를 받는 군소 자영업자들도 있으며, 설계사무실부터 공간 브랜딩, 인테리어 사무실, 부동산중개사무소, 개인 목수까지 결과적으로 집짓기와 관련된 다양한 주체들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중문화와 집짓기의 차이가 있다면 대중문화는 ‘문화’라는 층위에 소속된 개별 장르들이 체계화하여 어엿한 산업군을 이루고 있지만, 전통적인 산업군인 건설, 건축 시장은 현대 사회에서 레드오션으로 전락해 가는 처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아파트와 같이 경제성이 수반되는 주거유형은 건설시장을 통해 나름 산업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소규모건축물 및 단독주택 시장은 다소 혼란스럽다. 더군다나 현대의 건축 공학 수준과 비교하면 소규모건축물 시장에서 적용되고 있는 기술 수준은 이에 크게 못 미치는 실정임을 부인할 수 없다.

집짓기의 시작은 건축주가 대리부와 대리모를 선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집의 모습과 품질, 분위기 및 집짓기 과정의 합리성은 결국 대리부와 대리모의 유전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특히 우리의 집짓기 시장에서는 집도의의 역할이 부족한 상황이다. 건축주와 시공자(하우징, 개인 목수, 업자 등)만의 관계로 진행되는 집짓기도 있고, 건축주, 설계자, 시공자만의 관계로 진행되는 집짓기도 있다. 집짓기가 어렵고 집 짓다가 10년 늙는다는 이야기는 사실 전문성을 갖춘 조력자의 부재로 인한 문제이다. 조력자가 없으니 혼란스럽고 어려운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주택이라도 집짓기란 분야가 꽤 전문적인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집도의 없이 집을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비합리적이며 위험한 일인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문제는 이제 집짓기에서 조력자의 중요성을 인지하더라도, 집짓기에서 조력자라는 주체는 직능이나 법률상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설계자가 그나마 가장 조력자에 근접하는 주체이긴 하나 모든 설계자(건축가)가 조력자의 업무 범위와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조력자란 일련의 집짓기 과정 전체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총체적 의미의 전문가를 의미한다. 결국, 사람의 문제로 귀결된다. 집짓기는 시스템을 통해서 건축주의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해야 하겠지만, 현재로선 소규모건축물 시장에 신뢰성 있는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는 사회적 시스템은 없다고 해야 한다.

현재로선 건강한 DNA를 가지고 있는 대리부, 대리모들을 통해 일련의 집짓기 과정에서 건강한 집짓기를 안내할 수 있는 건강한 조력자(건축가)를 건축주가 알아서 잘 선정해야 한다. 조력자의 필수 조건은 사람과 사물, 환경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건축주와의 소통, 설계 및 시공 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전문성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조력자의 선정 기준이 다름 아닌 집짓기에서 건축가 혹은 건축설계사무소 선정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아뜰리에 비온후풍경 / OGL Archit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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