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에서 나침반과 칼만 있으면 정글 속에서 나름 멋있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다소 어리석은 발상이다. 정글에서 필요한 것은 나침반과 칼보다 현명한 안내자가 필요함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낯선 방문자에게 정글은 생존의 대상이지만 안내자에게 정글은 일종의 캠핑장이다. 당연히 집짓기는 생존의 문제가 아닌 문화적이어야 하고 일종의 여행일 수 있어야 한다.

정글에서 오두막을 짓고자 하는 이도 있고 정글에서 리조트를 짓고자 하는 이도 있다. 어떠한 경우든 건축주는 그 목적에 따라 목적에 부합하는 안내자, 파트너를 선택해야 한다. 사실 파트너 선정에서 이미 어떤 집이 지어질지 가늠해 볼 수 있을 정도로 정글에서 파트너 선정은 중요한 과제이다. 목적에 부합하는 합당한 주체들을 선별할 수 있는 안목과 상황에 대한 이해력은 오롯이 건축주의 몫이다.

정글에서 이러한 안내자를 선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익숙한 방법은 ‘평당 얼마인가?’라는 기준일 것이다. 정글에서 안내자의 전문성에 따라 생존의 문제일 수도 있고 여행의 문제일 수도 있는 중차대한 사안을 가격이란 기준으로 안내자를 선택하고 있다는 자체가 집 짓기의 불확실성을 고려하지 못한 발상이다. 치기 어린 디자인조차 새롭고 신선한 건축물로 주목받을 만큼 우리는 집 짓기는 사회적 경험과 문화적 토양이 척박하다 할 수 있다.

더욱 곤혹스러운 점은 안내자임을 자처하는 소위 전문가들이 너무 많다는 것인데, 가히 전문가 홍수의 시대이다. 전문가란 말 그대로 특정 분야에 특별한 경험이나 정통한 전문적 지식과 능력이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러한 전문가들의 전문성은 다분히 상대적이며 더군다나 너무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건축이란 카테고리 내에서도 설계, 구조, 시공, 환경 등 세부적인 전문가들이 있다. 현대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이러한 전통적인 세부항목들은 다양한 양상으로 변화하기도 하며,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설계전문가도 건축 전문가며, 구조전문가도 건축 전문가며, 시공전문가도 건축 전문가며, 환경전문가도 건축 전문가다. 전문가 홍수인 시대의 이유이다. 상식적으로 이 모든 전문가가 정글 여행의 전문 안내자일 수 없음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 홍수의 시대인 만큼 집 짓기는 안정적이고 체계적일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안정적이고 체계적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들이 적지 않다. 전문성은 종종 특정 카테고리와 프레임 속에서 폐쇄성으로 나타나며, 실질적인 유용성과 총체적인 합리성과 상치되는 때도 있으며, 다변화하는 현대의 사회적 양상 속에 기존의 전문성은 구태의연함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전문성은 표준화를 지향하며 이러한 표준화는 안정성을 보증할 것 같지만, 자격증과 같은 표준화는 또 다른 문제점을 일으키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건축사 자격시험을 통해 건축사가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건축 전문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이며, 표준화는 때에 따라 품질과 전문성의 차이를 희석하는 환각작용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일례로 근래 도시재생 관련해 여러 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나라에 도시재생 분야의 전문가는 사실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동안 도시재생이란 학제도 없었을뿐더러, 도시재생 분야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주체들도 전무한 실정이다. 그런데도 도시재생 전문가임을 자처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전문가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전문가인 시대인 것이다.

전문성은 뜬금없는 지점에서 이외의 유연성을 발휘하기도 하며 균질하지 못한 비전문성을 전문적으로 만들어주는 역설적인 상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의 전문성은 아직 체계적이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으며 스토리텔링 수준의 선언과 이미지만 난무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문가마다 말이 다른 것은 왜 이리도 많은지, 더군다나 설계비도 천차만별이고 공사비는 더더욱 천차만별이다. 건축주는 혼란스러운 이러한 상황에서 오히려 의심하지 않을 수 없으며 집짓기가 어렵고 어리둥절한 것은 어쩜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다. 정글에서 어떤 안내자를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선정해야 할지 건축주로선 난감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전문가 홍수 시대의 배경은 소위 모더니즘이라고 불리는 근대화의 패러다임이 개별 전문영역의 분업화와 세분화를 통해 기능과 효율을 중요시하는데 기인하고 있다. 전체에서 부분을 지향하는 전문성은 기술의 발달과 세분된 표준화를 통해 일정 부분 유용한 가치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다소 폐쇄적이고 표준화라는 명목으로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중요한 가치를 왜곡시키는 단점 또한 공존하고 있다.

집 짓기와 같은 건축 행위는 세분화의 가치와 총체화의 가치가 적절한 균형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실재 건축프로세스에서 설계전문가, 구조전문가, 시공전문가, 환경전문가 각자의 판단과 소견은 다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건축프로세스에서 의외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건축가는 이러한 개별 전문영역의 논의와 결과물을 조율하고 조정하며, 이를 통해 체계적인 건축적 작업으로 총체화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건축가는 수천 가지 상황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하며 – 피터 줌토르 저, 장택수 역, 『분위기』, 나무생각, 2015, p.66. – 건축의 융합적 속성 때문에 건축가에게는 늘 통합적 능력이 강조됐다.

건축의 묘미 중 하나는 이러한 건축의 개별 전문적 특수성이 건축이란 대상을 통해 총체화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총체화의 주체는 건축가이며 전문가와 다른 건축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건축가는 설계전문가를 의미하거나 설계 업무를 건축가의 전문성으로 한정해서는 곤란하다. 설계자의 설계도면은 일종의 ‘악보’이자 ‘시나리오’로 비유한다. 하지만 악보와 시나리오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음악 또는 영화 그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건축은 반드시 건설이라는 행위를 통해서만 실재할 수 있다. 설계도면과 인허가를 완료했다고 해서 건축가의 역할을 다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후 시공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사안들에 대해 건축주는 난처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음악과 영화에서도 악보와 시나리오는 적지 않은 시간과 반복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이지만, 이후에도 다양한 후속 작업을 통해 실재하는 음악과 영화로 존재할 수 있다. 이러한 생산 활동 전체를 총체화하는 것이 디렉터의 역할이고 프로듀싱의 전문성으로 집 짓기에서 요구되는 건축가의 역할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건축은 건축의 대리부 격인 설계의 DNA와 대리모 격인 시공의 DNA를 통해 실재하는 건축으로 완성되지만 이러한 DNA들은 스스로 작동되는 대상이 아니라 집도의 격인 건축가의 행위를 통해 작동된다는 것이다. 건축가의 행위는 당연히 설계적 DNA와 시공적 DNA를 포함한 행위이며, 설계적 DNA나 시공적 DNA에 한정된 행위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총체성이라는 의미에서 건축가의 행위는 전문성과 또 다른 의미의 전문성이며, 건축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디자인 Design 이란 본연의 의미 역시 대상에 대한 기획 및 설계라는 요소부터 제작, 방법 등을 포함한 총체적 의미이다.

특히 단독주택 등과 같은 소규모건축물에서 건축가의 총체적 전문성은 대규모 프로젝트보다 훨씬 극명한 차이를 드러나게 한다. 대규모 프로젝트는 상대적으로 전문적 네트워킹 및 체계적인 비교 검토 등으로 나름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지만, 소규모 프로젝트에서 프로세스 전체는 오롯이 건축가 개인기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총체적 전문성이란 개별 전문영역의 통합이란 관점의 의미가 가장 상식적인 의미이겠지만, 이외에도 추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개별 전문성의 영역은 건축에서 기술 및 공학적 내용과 관계된 분야들로, 재료의 물성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재료 간 관계성의 집합인 디테일에 대한 분야, 구조 공학적인 내용 및 실질적인 구축과정인 시공에 대한 분야 등이다. 특히 근래에 들어 건축물의 온도, 습도, 공기 질 등의 환경공학 또는 건축물리학적 관점의 쾌적성과 건강함에 대한 부분들도 기술 및 공학적 내용과 밀접한 분야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적인 내용과 비용에 대한 상관성 또한 건축가의 총체적 전문성에 대한 분야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적인 내용 이외에도 계획적인 관점에서 개개인의 소소한 삶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사회의 다양한 담론들과 사람과 사회의 관계성 속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 환경에 대한 여러 담론 등은 총체적 전문성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들일 것이다. 물론 아름다움 혹은 윤리성이란 다소 형이상학적 대상들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결국, 건축가의 총체적 전문성은 인간, 사회, 기술, 환경, 미학이란 대상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며, 이러한 대상 간의 현상과 관계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러한 대상 간의 관계성 속에서 건축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어떤 목적 행위에 대한 합리적인 방법을 계획, 제안하고 실행하는 것이 건축 디자인이다. 건축가의 총체적인 전문성의 의미는 다름 아닌 건축 디자인 Architectural Design 이란 개념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소규모건축물 시장에서 건축가의 모습은 요구되는 필요성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건축주는 집을 짓고자 하는 생각과 마음이 정리될 즈음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과 더불어 ‘그럼 누구한테 물어봐야지?’라는 의문이 생긴다.

한편에선 ‘당연히 건축가를 찾아야지’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몰라도 예비건축주 대부분은 건축가란 존재를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그들이 무슨 일을, 왜 필요한지도 사실 잘 알지 못한다. 무엇보다 도대체 그 건축가들이란 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도 잘 모른다. 감기에 걸리면 주변 내과에 내원하여 진료받고 약국에서 약을 받아 복용하는 일상적인 행위는 사실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시스템이다. 이에 비하면 그 존재조차 낯설고 알면 알수록 신비주의처럼 보이는 건축가들의 낯선 모습은 필요에 따라 병원에 가고, 약국에 들를 수 있는 일상적인 모습으로 바뀌어야 할 대목이다.

이 틈을 이용해 어떤 기획자들은 건축가들 몇몇을 보기 좋게 거느리고 집짓기 열풍의 선구자 역할을 자처하기도 한다. 다양한 광고 문구와 저마다의 차별성을 앞세우는 마케팅의 홍수 속에서 집짓기의 첫 단추부터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집을 짓고자 할 때 건축가로서는 건축가를 찾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집짓기 현실에서 건축가를 통해 지어지는 집은 그렇게 많지 않다. ‘당연’하다는 생각은 생각만으로 ‘당연’해지지 않는다. 사회적 합의와 체계, 제도적 시스템 등이 비교적 오랜 시간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 때 ‘당연’하다는 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

우리의 집짓기 과정에서 건축가란 존재가 낯설게 여겨지는 이유는 외적인 이유보다 내부의 문제이다. 설계사, 건축사, 건축가, 디자이너, 공간 디자이너, 플래너 등 비슷비슷해 보이는 단어들은 즐비하지만 명확한 기준이 없다. 건축계가 처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소위 이해당사자 간 입장에 따른 단체별 진영논리 등에 의해 제도적으로 불완전한 상태가 지속하고 있고, 이로 인해 건축 본연의 가치를 현실 사회 속에서 실천해 가는 것은 매우 힘겨워 보인다. 건축가와 건축사에 대한 논쟁은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통합과 화합의 대상이며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 중요한 문제이다.

한편에선 소위 건축의 예술적 가치, 작가적 경향 중심으로 집짓기 본연의 가치를 왜곡시키기도 한다. 종종 건축가들은 자신의 건축물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최적화된 빛과 사진가의 사진술 속에서 탄생한 가장 이상적인 투시도적 표현의 성과물을 사진과 패널 등의 형식으로 만들어 설명하곤 한다. 또한, 이러한 결과물을 전시관 또는 미학적 수사를 첨가한 매체를 통해 설명하는 것을 선호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완공 후 거주자는 단 한 번도 인지할 수 없는 파사드 Facade 에 대한 구성적 기교에 몰두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을 설계도면이란 형식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건축가의 고유한 역할임을 자부하곤 한다. 물론 이러한 행위들이 건축에서 중요한 부분임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방법들로 건축의 본연의 가치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계도면은 일종의 표현수단이며 약속된 기호체계일 뿐 건축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건축가에 대한 낯선 느낌은 건축가 스스로 만들어낸 이미지이다. 그리고 여전히 개별영역으로 분화된 전문성의 의미로 건축가의 개념을 한정시키고 있는 것 또한 건축가 스스로이다. 모더니즘의 그늘을 벗어나고 있는 시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세분된 전문성이 아니라 총체화된 전문성일 것이다.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건축은 단지 장인의 기술이 아니라 모든 테크놀로지에 대한 주요한 지식과 통제력을 소유하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다른 장인들을 이끄는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는 예술로 간주 – 가리타니 고진 저, 김재희 역, 『은유로서의 건축』, 한나래, 2013, p.66. – 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일련의 집짓기 과정 전체를 총괄하는 것이 건축가의 존재 목적이다. – 김광현 저, 『건축 이전의 건축, 공동성』, 공간서가, 2014, p.372. – 총체적인 전문성을 갖춘 건축가는 집짓기에서 건축주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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